1. 한라산의 또 다른 풍경
한라산 정상으로 가면서 숨은 턱밑까지 차 오릅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돌면 푸르른 하늘은 점점 공간감을 넓혀가고 활엽수들은 자취를 감추고 서서히 주목의 멋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낮게 커가는 주목들 사이사이에 고사목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고사목들은 흰 눈을 덮고 있는 고드름처럼 또는 오래된 동굴에 수많은 세월 켜켜이 쌓인 신비로운 석순처럼 솟아올라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란 주목을 비유하듯 한라산이 품고 있는 자연의 시간과 풍경은 삶을 더욱 겸손하고 경이롭게 만들어 줍니다.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나무계단들을 힘겹게 오르다 보면 다리근육의 무거움이 몸까지 흔들어 오면 가는 걸음을 멈추고 청명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십니다. 그 길의 계단에 앉아 먹었던 작은 초코바는 세생의 어느 산해진미 보다도 환상적이었습니다. 한라산을 온몸으로 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드디어 눈앞에 계단이 아닌 백록담을 감싸고 있는 한라산의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정상의 감동을 느낄 시간도 없이 줄을 서야 합니다. 한라산정상 백록담 비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약 70~80m의 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백록담 정상부근에서 GPS를 켜고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으로 한라산 등정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인증서는 모바일 등정인정-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 주소창을 클릭하면 등정인증란에 한라산 등정인정 예약번호를 입력 후 백록담 정상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을 첨부하고 신청하면 완료됩니다. 이 신청서는 안전하게 하산을 한 후 탐방입구에 설치된 인증서 발급 키오스크에서 출력하시면 됩니다. 인증사진을 찍고 인증서를 신청하는 과정은 백록담 비석 대기줄에 서서 하시면 덜 지루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드디어 백록담이 새겨진 돌비석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래 기다렸지만 그 벅참은 다시 차오르고 힘들었던 표정은 사라지고 세상을 다 얻은 듯... 제주를 내 발아래 두고 힘찬 몸짓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게 됩니다.
2. 드디어 백록담
백록담을 감싸 안은 봉우리 언덕을 올라서면 우뚝 솟은 기암괴석들과 움푹 들어가 펼쳐진 녹색 풍경과 함께 흰 사슴이 와서 물을 마셨다는 백록담이 웅장하고 위대하게 펼쳐집니다. 잠시 생각과 몸이 정지되어 백록담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집니다. 하늘아래 1950m의 한라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푸른 물의 정기는 말 그대로 천지 만물을 생성하는 원천이 되는 기운을 한껏 뿜어내고 있고 그 기운을 바라보며 맞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로써 공간 내에 머물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들은 어떤 위치에서 찍어도 멋스럽고 웅장합니다. 욕심은 백록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봉우리를 한 바퀴 돌며 곳곳에서 보이는 다른 시선과 다른 자연의 모습을 담고 싶지만 허가된 구역에서만 자연을 담고 느끼는 것이 자연을 배려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평화롭게 보존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우리는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백록담에서 하산하는 방법은 올라왔던 성판악으로 다시 내려가는 방법과 반대 탐방코스인 관음사 탐방코스 방향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차를 제주 국제대학교 환승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성판악 탐방코스로 등반을 시작하였기에 관음사 탐방코스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환승주차장에 주차하고 등반하시는 분들은 등반을 시작한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관음사 입구에서 제주 국제대학교 환승주차장으로 이동거리는 성판악입구에서 제주 국제대학교 환승주차장으로 이동거리보다 짧습니다. 단, 관음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는 국제대학교 환승주차장으로 가는 버스가 1시간에 1대씩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시간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관음사 입구 주차장 근처에도 택시가 대기하고 있으니 하산으로 많이 지쳤다면 택시 이용도 추천합니다.
3. 많아도 너무 많은 벌레
한라산 정상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백록담에서 웅장하고 위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충분히 즐기며 간단히 식사를 하고 움직이고 싶었지만 벌레들이 너무 많아 식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백록담에서 만난 벌레는 검은 몸체에 검은 날개를 달고 등윗부분에 붉은색 점박이를 하고 있어 조금은 혐오스럽긴 하지만 사람을 물지도 않고 전염병을 옮기지도 않으며, 진딧물이나 환경정화를 하는 익충으로 러브버그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익충이지만 사람에게도 많이 달라붙고 너무나 많은 개체수가 날아다녀 온전하게 자연을 느끼고 평온하게 식사를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백록담에서 식사를 접고 하산하는 길에 잠시 쉬며 먹기로 하고 등산코사가 아닌 관음사 탐방코스로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나무데크가 깔려있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한라산 정상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조금만 걷다 보면 천천히 나무계단이 아래로 굽이굽이 놓여 있는데 관음사 탐방코스의 하산 시작입니다. 이 길의 시선 끝으로는 제주도의 또 다른 모습에 잠시 아무런 생각 없이 광활한 대자연을 눈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