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지리산 자락, 첩첩산중에 자리한 외진 마을. 겨울이면 눈이 소복이 쌓이고, 길이 막혀 고립되기 일쑤지만 그곳에 사는 김갑연 할머니(82)는 적적할 틈이 없습니다. 19살에 이 마을로 시집와 여섯 남매를 낳고 키워 다 떠나보낸 후, 홀로 생활한 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녀 곁에는 둘도 없는 단짝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온 안분조(76)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분조 씨는 갑연 할머니가 혼자 사는 게 늘 걱정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러 말벗이 되어주고, 집안일도 도맡아 합니다. 겨울철이면 눈길을 헤치고 집까지 찾아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갑연 할머니가 사는 황토방은 오래되었지만, 따뜻한 정이 오가는 곳입니다. 둘은 함께 지리산 곳곳을 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마솥에 푹 고아 몸에 좋은 식혜를 만들어 나눠 마십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앞마당에 나가 눈사람도 만들고, 장작불을 피워 솔잎을 깔고 찜질을 하며 담소를 나눕니다. 솔잎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황토방에서 장작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르고 찜질을 마친 후에는 김치 국밥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웁니다.
이렇게 함께한 세월이 쌓이면서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식들은 멀리 있어도, 이 산골짜기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두 사람은 더없이 단단한 인연으로 묶여 있습니다. 오랜 세월 쌓인 우정과 정이 깊은 만큼, 둘이 함께하는 일상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심심산골에서 보낸 세월이 80년을 넘겼지만, 갑연 할머니는 외롭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도 두 사람의 정이 녹여 주는 덕에 오히려 따뜻하기만 합니다. 나이 들수록 가장 큰 행복은 돈도, 명예도 아닌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단짝과 함께하는 이 겨울이, 어쩌면 그녀들에게 가장 따뜻한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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